왕세충



왕세충(王世充, Wang Shichong, ? ~ 621년)은 수나라 말기부터 당나라 초기에 걸쳐 활약했던 군웅이자 수나라 최후의 황제양동(楊侗. 수 공제)을 섬겼던 수나라의 장수 중 한 사람으로, 후에 정나라의 황제를 자칭하여 짧은 기간 동안 하남 일대를 지배하였다. 그는 수 양제의 치세 중에 반란군의 진압에 성공한 몇몇 수나라 장수 중의 한 사람으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, 양동의 짧은 치세 중에는 당시 최대의 유력 군웅인 이밀을 파멸시키고 그의 영토를 탈취하였다. 그러나 황제가 되고 나서부터 당나라 군대의 군사적 압박을 감당하지 못하고, 하왕(夏王) 두건덕에게 가세해 줄 것을 줄기차게 요청하기에 이르렀다. 두건덕이 이세민(훗날의 당 태종)에게 참패하여 사로잡히자, 스스로 항복하였다. 당 고조는 그의 목숨을 살려주었으나, 결국 그가 처형했던 독고기(獨孤機)의 아들이자 당나라의 지방 관료였던 독고수덕(獨孤修德) 형제의 손에 암살당하였다. 는 행만(行滿).

목차

생애


수나라 신풍(新豊)사람이다. 본래 성은 지(支)씨로 그의 할아버지는 서역 사람이었다. 그의 할아버지 지퇴누(支頹耨)가 죽은 후에 할머니가 왕 씨를 가진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, 그의 아버지인 지수(支收)도 그때 입적이 되었고, 그 후 그의 아버지도 성을 바꾸어 왕씨로 살았다. 왕수는 후에 변주(汴州, 현재의 카이펑)의 지사의 비서관으로 복무를 하였다. 왕세충이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은 어렸을 때 학구적이었고 특히 병법에 집중하였으며 또한 법률에도 밝았다.

수 양제 때 강도군승(江都郡丞)으로 임명되어 주섭(朱燮), 관숭(管崇), 맹양(孟讓) 등의 군벌들을 집압하여 강도통수(江都通守)로 승진하였다. 우문화급(宇文化及)이 양제를 시해하자 왕세충은 월왕(越王) 동(侗)을 옹립하여 이밀(李密)과 싸워 격파하고는 스스로를 정왕(鄭王)으로 칭하고 연호를 개명(開明)이라고 하였다. 당 태종에게 패하여 당나라에 항복하였으나 622년 장안에 이르러서 암살당하였다.

가족 관계


부모

형제 및 조카들

자녀

  1. 태자 왕현응(太子 王玄應)
  2. 한왕 왕현서(漢王 王玄恕)
  3. 왕현경(王玄瓊)

왕세충이 등장한 작품


참고 자료


전임
수 공제 양동
중국 정나라 황제
619년621년
후임
당 고조 이연



분류: 생년 미상 | 622년 죽음 | 수나라의 태위 | 수나라의 상서령 | 수나라의 장군 | 당나라 사람 | 중국의 황제 | 암살된 사람 | 7세기 중국 사람 | 수말당초의 군벌 | 7세기 중국의 군주


데이트: 16.03.2021 08:47:37 CET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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